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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웨이의 숲/보고 느끼다

문자추상 - 이응노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루쏘 갤러리에서 고암 이응노 서거 22주기 특별전 NON-PAINTING 이 열렸다.
전시일시:2012.2.2~2.20
http://blog.naver.com/alou111

대부분 문자추상이라 불려질만한 작품이지만 문자라기보다 기하형태의 도형에 가깝다.라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대그림의 형태들도 없지 않다. 그는 1960년대 후반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전통동양화에서 일신한 내용으로 문자적 소재와 형식으로 콜라주라는 방법에 천착한다. 콜라주는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이 다의적으로 읽히고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특징을 기반으로 한다.
그가 유럽에 거주하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은 언어 사용의 이질성이었다. 일상의 언어활동이면서 이질적인 언어구성의 콜라주 된 경험이다. 해체와 구성이라는 이중적 작업에 다르지 않았다.
언어의 이질성을 시각화 하는 것이야말로 사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화 정신과 다르지 않은 구체적인 경험이다. 또한 초기의 문자형태가 후기로 갈수록 기하도형에 가까워지는 것이나 전자체의 글자 사이로 드러나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듯한 작업들은 문자로서의 개념과 시각이라는 구체성 사이에서 온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인다. 또한 회화로서 형식을 만드는 추상과 구성이라는 화면의 공간은 문자보다 문자의 자기 변형이 요구된다. 문자를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문자에 매이지 않고, 문자라는 개념을 시각적 구체성으로 현현시켜 낸 것이다.

강선학(미술평론)

우연히 드른 겔러리에서 '문자추상'의 작가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뿌듯함이 있었다.
천에 그려 넣은 문자들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전체적인 구성이 너무 멋있어 그것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같은 그림, 그러나 누구나 하지 못하는 그림이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곳에 온 다른이들이 이 그림을 보며 어떻게 느낄까라도 생각하며 그들의 뒤통수를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정말 내가 상상도 못 할만큼의 다양성이 살아있으니까말이다. 그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며 다양한 가운데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고 역시 작가의 능력...